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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집터,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명당은 언제나 한정적이고 얻고자 하는 경쟁이 치열하다. 과거는 어떠했을까? 고대 시대에도 수렵이나 생존에 용이한 지대를 살펴 선정하고 그러한 터에 주거지를 형성했다. 이것은 사람이 살기 좋은 터를 찾는 풍수와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터를 확보하고 생존하기 위하여 지금보다 더 치열하게 경쟁했을 것이다.
풍수의 기원
많은 풍수 전문가들은 풍수의 역사가 과거 5천 년 전 고대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중국의 전설 속의 고대 천자인 황제 헌원씨가 고대로부터 내려온 점술인 기문둔갑이 담긴 신서를 받고 중국을 통일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존하고 있는 헌원씨의 무덤이 풍수적 관점이 짙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는 중국의 고대 무덤 중 1호이자 천하제일릉 일명 황제릉이라 불린다. 풍수가 과거 문화와 얼마나 밀접하였는지 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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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의 기록 문헌
풍수에 대한 문헌은 한나라 시대에 반고가 편찬한 한서에 기술되어 있다. 한서는 중국 이십사사에 포함된 한나라시대에 역사서이다. 당시 풍수보다는 감여(堪輿) 불렀으며 궁택지형 및 감여금궤 등 풍수지리 이론이 최초로 문헌으로 등장하였다. 풍수지리에 대한 이론이 해당 시기에 점차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는 기록이다.
궁택지형(宮宅地形)
거택이나 지형의 길흉을 점치는 책으로, 오행을 집과 주인을 연결하여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최초의 풍수이론이다.
감여금궤(堪輿金櫃)
그 당시 풍수가 아닌 감여로 해당 명칭이 최초로 등장한 책이다. 감은 천도이고, 여는 지도를 말한다고 하였으며, 초기 풍수지리에 대한 지식을 감여학이라고 불렀다.
풍수라고 불린 이유
과거 중국에서는 풍수보다는 지리, 지형 또는 집점 등 다양한 용어로 불렀으며 통일된 명칭은 없었다. 오늘날 풍수지리의 시조인 곽박의 장서에서 처음으로 풍수에 대한 이론이 기술되어 있다. 최초 장서는 과거 금낭경으로 불렸었다. 당나라 황제 현종이 홍사라는 신하를 불러서 산천의 형세를 물어보았는데, 그때마다 그는 장서를 인용하여 설명했다. 홍사는 “이 책은 세상에서 귀한 것이고,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보여서는 안 되는 비보서”라고 말하면서 현종에게 이 책을 받쳤다. 이 말을 들은 현종은 이 책을 비단으로 만든 보자기 즉 금낭에 넣어 다시 장롱 깊이 넣어 보관했고, 이때부터 금낭경이란 이름이 유래되었다. 이는 당대 사람들에게 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황제가 그토록 아끼고 혼자만 보고 싶어 하는 서책? 황제가 아끼고 아끼는 책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면서 풍수에 대한 이론이 더욱더 널리 전파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승풍 즉산 계수즉지(氣乘風則散界水則止)
기는 바람을 타면 흩어지고, 물의 경계에 이르면 멈춘다.
풍수지법 득수위상 장풍차지 (風水之法 得水爲上 藏風次之)
풍수법은 물을 얻는 것이 먼저, 바람을 막는 것은 다음이다.
고인 취지사불산 행지사유지 고위지풍수(古人 聚之使不散行之使有止故謂之風水)
기가 모이고 흩어지지 않는 곳, 기가 행하다가 멈춘 곳을 자고로 풍수라고 한다.
풍수는 말 그대로 바람과 물을 의미한다. 오늘날까지 대중적으로 우리는 “풍수” 중국에서는 “Feng Shui”라고 부르고 있는 이유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이처럼 장서는 오늘날까지도 풍수 전문가들의 풍수의 정석으로 통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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